구약: 사무엘 하 2 SAMUEL 6:1-5, 12-23
신약: 마가복음 MARK 6:14-29
제목: 세례 요한의 죽음
아리따운 젊은 여인이 하늘하늘한 옷을 입고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춥니다. 생일잔치에 왔던 모든 사람들이 넋을 잃고 보고 있습니다. 이윽고 음악이 끝났습니다. 따라서 춤을 추던 여인도 박수치며 환호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합니다. 이것을 보며 마음이 흡족해진 헤롯왕은 그 여인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내가 다 들어줄께하며 기쁜 마음을 나타내었습니다. 춤을 추었던 여인, 살로메는 왕비인 자기 어머니 헤로디아에게 무엇이 좋겠는가고 물었습니다. 헤로디아는 그동안 눈에 가시처럼 여겨왔던 세례 요한의 목을 달라고 하라고 합니다. 자신이 남편을 죽게하고 그 형제인 지금의 헤롯왕과 사는 것을 요한이 잘못된 일이라고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동안 여러번 기회를 엿보다가 그래도 헤롯 왕이 요한의 말이 귀에 거슬르기는 하지만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여겼기 때문에 허락받지 못하다가 오늘 그 기회를 잡은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장담했던 터라 헤롯은 할 수 없이 살로메의 청대로 세례요한의 목을 잘라 소반에 가져오게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 끔찍한 이야기를 통해 성경은 중요한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례 요한이 성경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과 동 시대에 태어나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에게 세례를 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광야에서 낙타털옷을 입고 석청과 메뚜기를 먹으며, 사람들에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외쳤던 선지자였습니다. 또한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천국에서는 이보다 작은 자가 없겠으나 이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도 더 큰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던 사람입니다. 곧 세례 요한은 주님 성언의 외적인 면을 표상한 인물입니다. 곧 그는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신 주님'이 성언으로 가르치시는 문자적이고 외적인, 곧 도덕적이고 자연적인 뜻으로 우리를 가르치시는 성경의 교훈을 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외쳤던 광야의 소리는 직선적이고도 강직했습니다. 몸에 털이 많았던 요한은 바로 성경에 대한 문자적인 지식이 많았던 사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가 시동생과 눈이 맞아 남편을 죽게하고 같이 동거하던 헤로디아의 부도덕한 행위를 꾸짖었던 것입니다.
사실 목사를 하면서 가장 힘든 일중 하나가 말을 잘 골라 하는 일입니다. 그 사람의 잘못된 일이 지적하여 깨우쳐주고 싶어, “집사님, 그 일은 잘못되었는데요. 이렇게 하셔야...” 이런 말도 채 다 끝을 못맺을 만큼 이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은 성급하고 참을 성이 없습니다. 그리고 자존심도 세고요. “아니 당신이 뭔데 그래. 목사면 다야? 게다가 우리처럼 교인 수가 얼마 안되는 목사는 더 우습게 보며...나중엔 막말까지 서슴치 않습니다.” 지까짓게 뭔데. 재수없게 시리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냐고 하며 핏대를 올립니다. 그래서 충고는 요즘 참 귀한 것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스스로 삼가며 몸조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족 사이에도 그렇습니다. 부부간에도, 자식도 어릴 때나 그렇지 크게 되면 안하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합니다. 자칫하면 의 상하니까 말입니다. 어쨌든 교회 안에서 그런 말을 하면 십중팔구는 화를 내고 교회를 떠나거나 원수 같은 사이가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왜일까요?
세례 요한은, "회개하라 이 독사의 자식들아 위선자들아.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놓였다"고 직선적인 막말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했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는 사람이 있었던 반면에 헤로디아처럼 앙심을 품고 내가 언젠가는 그 말을 하는 너의 목을 따겠다고 벼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오늘날 성서의 글자로 주어지는 교훈을 우리들은 어떤 태도로 받아 들이는걸까요?
세례 요한의 목잘림은 다른 선지자들의 죽음처럼 성경에서 문자로써 가르치시는 신령진리를 거부하기까지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오는 시험을 의미합니다. 곧 성경의 글자가 가르치시는 외적인 의미를 부정하고 외면하며, 심지어는 묵살하고 말살하려는 시험입니다. 곧 대표적으로는 십계명을 들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십계명을 읽거나 들으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듯 하나님 앞에 죄스러움과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리며 회개의 마음을 갖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아니 지금 옛날 호랑이 담배먹던 시대 때에 쓰인 그 법규들을 내가 따를 수도 없고 지켜야 할 이유도 없다. 아무리 하나님 말씀이고 계명이라고 해도 시대가 다른데 내가 그걸 왜 지켜야 돼?' 하며 외면하고 묵살하려는 마음이 곧 우리에게 있는 시험입니다.
이것이 주님 안에서 중생하려는 사람에게는 가장 빠져들기 쉽고, 또 그런 반면 넘기 힘든 가장 큰 장벽입니다. 신령 진리가 담겨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뜻과 맞지 않고 따르기 힘들다하여 무시하고, 가볍게 여기려는 태도가 우리들로 하여금 주님을 따르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시험이라는 말입니다.
사실 기독교의 모든 교회 안에서 가장 보편적인 신앙은 자신을 검토하고 자기에게 있는 죄를 인식하여 그 죄된 일에서 손을 떼든가 멀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안되면 구원은 없고 그 죄에 따른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험이니 영적 투쟁이니 하는 것은 사실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이 시험은 우리들이 조금 지닌 신앙마저도 깨부수고, 흩뜨리는 악마의 무기입니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론 이 시험을 이기기만 하면 역으로 자신이 가진 믿음에 더욱 강한 신념을 지니게 되고, 중생의 길로 나가려고 하는 결심을 더욱 북돋우어주는 역할도 합니다. 그러나 악과 거짓의 무기인 이 시험에서 우리가 사실은 조금도 자유스럽지 않습니다. 왜냐면 우리가 너무나 거짓과 악에 결탁되어져 있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중생의 길을 걷겠다고 결심한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한 시험은 마치 제방의 뚝과 같습니다. 제방에 파도가 계속 치고, 만약 조그만 틈새나 구멍이 생기면 계속 쳐대는 파도에 일시에 와르르르 무너지고 말며 물이 모든 것을 휩쓸며 들어오고 맙니다. 우리가 조금만 시험에 넘어갈만한 틈새를 보이기만 해도 악과 거짓의 파도는 우리 의지의 제방을 무너뜨리고 거침없이 넘쳐들어옵니다. 그래서 우리의 의지와 행동을 지배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렇게 강력한 악과 거짓의 시험을 이기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주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우리 힘만으로는 절대로 이 시험에 이길 수가 없습니다. 지옥을 정복하신 신령진리이신 주님께서 방패가 되고 칼이 되어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진리로 무장한 후에라야 우리는 시험과 맏딱뜨려 이길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사랑의 종교인 기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을 군대 용어인 '용사'라는 말로 표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다윗 왕이 블레셋을 쳐 무찌른 후에 하나님의 궤를 자신의 성으로 모시고 오는데, 나곤의 타작 마당에서 궤를 운반하는 수레를 끌던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들어 붙들었더니 여호와께서 진노해서 그를 죽이시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을 보고 다윗이 겁도 나고 화도 나고 하여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궤를 옮기게 하였습니다. 그런 여호와의 궤를 자신의 궁전에 모시기 싫고 두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벧에돔이 하나님의 복을 받음을 보고 여호와께서 무서운 분만은 아니구나 여기고, 이제 궤를 다윗 궁으로 다시 모시는 중에, "다윗이 힘을 다하여 즐겁게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다윗 성으로 들어오는 것을 사울의 딸이며 다윗의 아내인 미갈이 다윗왕의 그런 모습을 보고" 왕이 체통 없게 옷을 벗고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느냐고 조롱하고 업신여기는 마음으로 핀잔을 주자 다윗의 하는 말이, "내가 여호와 앞에서 한 일이다.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찌라도 그 말을 하는 계집종에게서는 높임을 받을 것이다." 곧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그 일을 세상의 것에 견주어 이렇다 저렇다 생각하는 너는 거룩한 일들을 알지 못한다는 말. 그 미갈이 죽는 날까지 자식이 없었다는 말은 다윗이 다시는 그녀와 가까이 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세례 요한의 죽음은 우리 안에 들어 있는 세상과 결탁된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인 진리를 무시하고 말살하고픈 시험입니다. 이 시험을 이기기 위해서는 주님께 기도하여야 합니다.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겸비한 마음의 자세로 인생을 살겠다고 주님께 회개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믿는 자의 할 일입니다. 자칫하여 헤롯이 저지른 잘못처럼 세례 요한이 거룩하고 의로운 하나님의 사람인줄을 알면서도 세상적 체면과 이해타산적인 마음으로 그 목을 자르듯 하느님 말씀을 묵살하고 말살하는 시험에 빠져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