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호세아 11장 1-11절
신약: 누가복음 12장 13-21절
증거: 삶의 유용성
퀸즈 쪽으로 가는 BQE(Brooklyn-Queens Expressway)를 타고 가다보면 높은 고가다리를 지나가게 되는데 그 밑 양쪽으로 참으로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을 만큼 많은
비석들이 있는 묘지가 있습니다. 그곳에 묻힌 사람들도 여기 있는 우리처럼 태어나, 성장하여 공부하고, 일하고, 가정을 가지며 살다가,
늙거나 병들어 죽음으로 이 세상을 떠나간 사람들일 겁니다. 또한 같이 한 세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있으며,
그들도 역시 사랑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면서 살다 언젠간 홀연히 이 세상을 떠나 갈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human's life)에서 언제가 시작이었고 또 끝일까요? 한
사람의 생애는 진정 어떤 것에서 그 의미가 있을 수 있는 것인가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자기에게 필요한 것들이나 또 좋아하는 것들을 소유하고
싶어하며 또 그것들을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합니다. 그것이 돈이든, 재산이든, 지식이든, 명예든, 예술이든지 간에....그러나 예수님은
성경에서,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에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같으니라(누가 12:20-21)"고 하셔서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세상의 것만을 추구하며 사는 것이 어리석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그렇게 머리로는 이해가
되면서도 실제로는 이해한 것과는 별도로 살고 있는 것을 문득문득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길이 결코 그렇게 행복할 수 없음을
예감하면서도 말입니다.
환경변화에 잘 적응하는 동물로 알려진 개구리를 차가운 물이 담긴 냄비에
집어넣고 적응할 시간을 주면 변온동물인 개구리는 얼마 후 물의 온도에 체온을 맞추어 곧 적응을 합니다. 그러면 다시 물의 온도를 조금 올립니다. 그 다음에도 개구리는 몸의 온도를 그 물
온도에 맞추며 곧 적응을 합니다. 그렇게 개구리가 적응할 시간을 주며 다시 물의 온도를 계속 올려가다 끓는 점까지 올려도 개구리는 자신이 적응한다고 믿고 냄비에서 뛰쳐나오지 않고 결국 뜨거운 물에
삶아져 죽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처음부터 뜨거운 물에 개구리를 집어넣으면 개구리는 곧 바로 물속에서 뛰쳐나와 목숨을
구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개구리가 죽는 줄도 모르고 점점 자신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현상을 '점진적 죽음'이라고 하고, 끓는 물에 위기를
느껴서 뛰쳐나오는 것을 '근원적 변화'라고 합니다. 복잡하고 다변화적인 세상에 사는 현대인들은 어쩌면 점진적 죽음의 길을 가고
있는 개구리와 같이 자신이 환경에 잘 적응해 가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 길을 가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앗, 뜨거워!" 하는 놀람이 의식에 변화를 줍니다. 한 마디로 가치기준이 바뀌어야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의사를 보러 대기실에서 기다리다가 뽑아든 잡지에서 가끔 발견할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암이나 불치의 병에 걸렸다 살아나든지, 사업이 망해 알거지가 되었다든지, 큰 불행이나 재해를 당했던 사람이 재기해서 그 사람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다라는 이야기들입니다. 그런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감동을 줍니다. 경상도 사투리로 그 사람들은 ‘시껍(크게 놀램)’을 한 것이지요. 개구리가 뜨거운 물에 들어갔다 기겁을 해서 뛰어나온 것이 곧 살게 만든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현대에 사는 우리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하든 환경에 적응해 보려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악덕 상인들이 먹을 것에 해로운 것을 넣은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그냥 눈감고 먹고, 이 사회의 부조리나 불평등에도 적당하게 적응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소위 세상에 맞추어 사는 것입니다.
누구나가 다 “앗! 뜨거라” 하는 경험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간접 경험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예를 보며 느끼고 배워 자신의 삶에 받아들일 수 있다면 큰 지혜일 것입니다.
임마누엘 스웨덴보그(Emanuel Swedenborg 1688-1772)는 그의 저서 [신령 섭리 Divine Providence #220.6]에서 말하기를,
자신의 삶 속에서 경험되고 나타나지는 모든 현상들에서 영계와 천상계를 비춰보는 눈을 가지고 살게 된다면 우리는 더욱 분명히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성경의 글자로 나타난 현상적인 말씀에서 얻어지는 뜻에 더해 그 속에 내재된 영적이며 천계적인 대응의 뜻에 가까워지면 질수록 그가 느끼는 기쁨과 행복은 증가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천사들이 상수리 나무사이로 나타나자 그 후로 아브라함은 볼 때마다 그 나무에게 절을 했다고 하는 성경의 이야기는 성서의 글자의 의미를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되는지를 알게 합니다. 현상적인 것으로 나타난 것은 자연적이며 일시적인 것일 뿐입니다. 부나 재물도 자신만을 위한 것으로 여겨 그것에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있을 때는 자연적이고 일시적인 것이 되고 말지만, 그것을 유용하게 쓰며, 그 부나 재물이 주어진 의미를 생각하며, 그 재물로써 선하고 의로운 일에 유용하게 쓰게 될 때에, 그는 더큰 본질적인 기쁨과 행복을 갖게 되며, 그래서 영적이며 천상적인 것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부나 재물 혹은 지식이나 기술 등은 개인에게 필요한 음식이나 주거, 식구들을 위한 것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속해 있는 사회, 국가 나아가서는 동료 시민에게도 필요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동료 간에나 어떤 모임에서든 자기 것을 내어 놓지 않으려는 사람을 봅니다. 모든 사람들이 참여하여 선한 일에 쓰자는 목적이지만 자신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까워 내어놓지를 못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주님은 어리석은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욕심에 눈이먼 자여!"
이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9:27)”라고 합니다. 죽음 후에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이며, 그 삶은 영원한 것임을 성경은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썩어 없어질 육신과 세상적인 것들의 한계 안에서 자신의 삶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영원한 생명의 삶을 생각하며 사는 지혜를 갖는 것은 그렇지 못하는 사람보다는 훨씬 가치 있고 행복하게 자신의 인생을 사는 삶이라고 하겠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16:3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마태 6:25-34)
결론적으로 한 사람의 유용한 삶은 그 자신의 인생을 기쁨과 즐거움의 삶으로 바꾸는 것이며, 자연적이며 일시적인 삶을 영적이며 천상적인 생명으로 승화시키는 것입니다. 또한 한 개인과 그의 가족들만이 아니라 그가 속한 공동체나 사회, 나아가 인류 모두에게 혜택을 주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느님을 믿고 따르는 예수인들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 것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가 어떻게 예수인의 실생활에서 유용하게(useful) 실현되어야 하는 것임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유용한 삶이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